Saturday, January 31, 2015

청소

혼자 살 때 나는 청소를 사랑했다. 홍콩 기숙사에서는 내 방의 '룸메이트' 머리카락을 치우며 하루를 시작했고, 시티에 살 때는 카페트의 머리카락을 일일이 브러쉬로 긁어댔다. 샤워를 하고는 매일 배쓰텁을 청소했고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말려놨다. 나 혼자 쓰는 욕조라 좀 대충 해도 됐겠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몸만 깨끗하고 정작 사는 곳은 시궁창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나 혼자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 때 배운 식초와 밀가루 조합의 위대함을 한국에서 꼭 써먹어야지 하고 큰 꿈을 안고 돌아왔다.

그런 다짐이 아쉬울세라, 한국에 오고 나니 정말 내 집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청소에 대한 내 열정은 급격히 식었다. 언제나 엄마가 있었고, 아빠가 있었다. 물론 내 방의 머리카락은 열심히 주웠고 나 나름의 규칙을 세워 내 방의 먼지는 '깨끗한 나의 기준'에 맞출 정도로는 살았다. 

오늘 샤워를 하다 보니 내가 집에서 한 번도 욕실 청소를 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왜지? 한국에서 고무장갑을 공수받아가면서 청소를 하던 내가 여기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멍해졌다. 청소를 어떻게 할 지 몰라 안쓰는 호텔 어메니티용 칫솔 하나를 집어 그냥 문지르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에 엄마가 하는 걸 보기만 하고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결국 나는 수도꼭지에 머리를 찧어 상처가 났고 온몸에 다시 두드러기가 났다. 항상 비좁다고 생각한 우리집 화장실이 새삼 올드 트래포드마냥 크고 크고 어마어마하게 크게 느껴졌다. 

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유아인의 글이 있다. 

학창 시절에는 엄마가 지금 쓰는 휴대폰 알람의 대신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이면 알아서 깨워주고 밥 먹여주고 용돈 쥐여 엉덩이 두드리며 투정쟁이 아들을 학교에 보냈다. 나는 그 용돈을 택시비로 쓰고 학교에 가서는 친구에게 빌붙어 딸기 우유를 마셨다. 엄마가 내게 제공한 집과 밥과 온갖 금품과 용역은 모두 다 공짜였다. 그때는 공짜인지도 몰랐다. 감사한지도 몰랐고 그래서 더 뻔뻔스럽게 일방적으로 누리던 사랑이었다. 내게 공짜를 주는 것은 엄마밖에 없다. 공짜가 공짜인 줄 모르고 살다가 엄마의 공짜 밥상이 1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이제 와 감격스러워지자 모정이 부채가 되어 뒤통수를 때린다. 

나도 결국 엄마의 희생과 아빠의 노력을 무상으로 뻔뻔하게 얻어먹고 있던 게 아닐까. 나는 내가 잘나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거라고 떠들었지만 거기에는 밤잠을 설치던 엄마와 내 전화 한통에 달려와주던 아빠가 있었다. 어디서든 다 주어질 권리라고 여겼지만 이건 결국 내가 누리던 특권이었다. 수도꼭지에 부딪혀 욱신거리는 이마가 나한테 정신차리라고 머리를 쾅쾅 두드려준 셈이다.

이렇게 말을 하지만 천성에 퉁명함이 3할은 되는 내가 엄마말을 고분고분히 듣거나 아빠한테 사근사근하게 할 것 같지 않다. 다만 내 마음이 뻔뻔함으로 더 번들거리면서 더러워지지 않게 열심히 닦아내야겠다.